월명동의 가꾼 소나무들은 ‘기본 사연’이 있습니다. [16]
운영자l2014-09-16
월명동의 가꾼 소나무들은 ‘기본 사연’이 있습니다. 그 사연을 통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우리를 깨닫게 하시고, 그와 같이 역사하시며 우리를 도우십니다. Y자 소나무는 수십 년 동안 크면서, 여러 사람들과 나에게 수백 번 베임을 당할 뻔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님이...
<만물>을 보고, 그것을 주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나 성자와 대화하여라. [40]
운영자l2014-09-11
월명동을 개발할 때,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님께 ‘성전’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인간의 기술과 장비로는 100톤이 조금 넘는 정도의 바위밖에 못 옮기니, 하나님께서 표적을 보이시어 성약역사 1000년 동안 두고두고 이야기하도록 ‘수백 톤짜리 바위’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월명동에 수백 ...
하나님은 주시되, ‘여건과 처지’대로 주십니다. [12]
운영자l2014-09-02
하나님께 간구하면 하나님은 더 좋게 해 주시려고 ‘다른 방법’으로 원하는 것을 이루어 주기도 하시는데, 이것을 모르고 무지 속에 상극 하다가 축복을 저버립니다. 하나님께 ‘이 땅’이 필요하다고 구했어도, 수년 후에는 상황이 바뀌니 ‘다른 땅’을 주기도 하십니다. 그런데 받는 사람이 무지...
돌도 관리하지 않았으면 존재하지 못하고 무너집니다. [14]
운영자l2014-08-26
야심작은 전체를 ‘돌’로 쌓았습니다. 그렇게 튼튼하게 쌓았어도 장맛비가 오거나 겨울철에 꽁꽁 얼었다가 녹으면, 옆으로 앞으로 기울어집니다. 돌 한 개의 무게가 50톤, 70톤, 80톤씩 나가지요? 그 크고 무거운 돌이 위에서 계속 누르고 있습니다. 그 크고 무거운 돌을 밑에서 받치고 있...
이와 같이 신앙도 말씀만 배운다고 다가 아닙니다. [11]
운영자l2014-08-19
나는하나님의 자연성전의 ‘나무, 돌, 잔디, 흙, 물’을 깨끗이 잘 관리하겠다고 매일 기도합니다. 잔디도 제주도에서 감귤 농장을 하는 한 장로님이 엄청난 영양제를 줘서 그렇게도 싱싱합니다. 잔디도 관리하지 않으면 병듭니다. 나무를 키우는 데도 나무 자체만 관리하며 가지를 치고 소독한다고...
<월명동 소나무>도 기도만 한다고 잘 크는 것이 아닙니다. [15]
운영자l2014-08-12
월명동 소나무도 기도만 한다고 잘 크는 것이 아닙니다. 손대서 관리해야 잘 큽니다. 때마다 가지를 쳐 주고, 해마다 나무 밑을 파서 나무 한 그루당 열 자루에서 스무 자루씩 퇴비를 해 줍니다. 다 합치면 수천 포대가 됩니다. 그래서 소나무들이 그렇게 컸지, 그냥 놔뒀으면 기본만 컸을 것...
<길>도 한두 개 냈다면, 별로입니다. [9]
운영자l2014-08-04
'월명동'도 '야심작'뿐 아니라 전체 돌 조경을 하여 돌을 많이 갖다 쌓고, 옆으로 쭉 길게 쌓고, 위로 높이 쌓았기에 아름답고 신비하고 웅장한 것입니다.만일 '야심작'만 돌 조경 작품을 해 놓았다면, 아름답지도 신비하지도 웅장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많은 돌을 갖다가 수백 미터를 길게 ...
<성지 땅 월명동>만큼은 90% 이상 ‘추측한 것 이상’이라고 할 것입니다. [6]
라기愛l2014-07-30
‘자기 추측’과 ‘실제’는 다릅니다.사업하는 사람 100명 중의 10명도 추측한 대로 성공하지 못합니다.그러나 하나님의 자연성전 <월명동>은 다릅니다.말씀을 가르치기 전에도, 말씀을 가르치는 중에도, 말씀을 가르친 후에도 <월명동>에 처음 가는 사람에게 영상이나 사...
만들기 전에는 모든 것이 ‘화’가 되었고, 만든 후에는 ‘복’이 되었습니다. [14]
운영자l2014-07-14
월명동도 만들기 전에는 겨울에 눈이 오면 눈이 쌓여 다닐 수가 없으니, ‘해’가 되고 ‘고통’이 되어 눈이 녹기만을 기다렸습니다.비가 오면 논밭이 떠내려가고 집에 비가 새니 고통을 받으면서,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햇볕이 쨍쨍 비추면, 너무 뜨겁고 더워서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나 ...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남긴 유산은 ‘아무도 찾지 않는 월명동의 초가집 집터 200평’이었습니다. [16]
라기愛l2014-07-07
저는조상들에게 받은 유산이 없었습니다. 집은 매우 가난해서 먹을 것도 부족했고, 농사지을 논밭도 적었습니다.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남긴 유산은‘아무도 찾지 않는 월명동의 초가집 집터 200평’이었습니다. 아버지 때, 명당자리를 찾는 사람들이 그 집터를 보고 ‘전설의 명당’이라고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