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금산군 진산면 석막리 월명동은 정명석 선생과 그의 제자들이 1989년부터 헌신적인 사랑과 정성으로 만들어가는 하나님의 자연성전이다. 예전부터 달이 밝다고 하여 달밝골이라고 하였으나 정명석 선생이 기도하는 중에 이곳은 서울의 명동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 것이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월명동(月明洞)으로 개명하였다.
구불구불 아스팔트가 끝나고 가파른 콘크리트 길을 따라 숨가쁘게 언덕을 오르며 여기에 무엇이 있겠나 실망할 즈음 그림 같은 호수 위에 높게 솟아오른 팔각정의 윗부분부터 아름다운 자태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찾는 이들은 감탄을 자아내기 시작한다. 이어 팔각정 옆길을 따라 조금 더 오르면 넓게 펼쳐진 운동장이 모습을 드러내고 갖가지 모양의 기암괴석과 소나무는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 조화롭게 어우러져 그 웅장함은 모두를 경탄하게 한다.
그렇게 감동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바라보이는 잔디밭은 돌아 온 아이를 감싸듯이 양탄자처럼 포근하게 깔려 있어 어머니 품 같은 평화로움을 안겨주고 그 곁에 힘찬 글씨로 새겨진 ‘자연성전’ 바위는 그 의미를 더하여 준다. 그 아래에 정갈하게 흐르는 약수는 듣는 이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고통을 이겨내고 벗어나게 하였다.
자연성전 너머로 보이는 호남의 금강 대둔산은 이 모든 것을 품에 품으려는 듯 병풍처럼 둘러쳐 진 모습이 인간이 만든 조경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함께 어우러지며 경이로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무엇이 자연이고 무엇이 인공인지 구분할 수 없는 하늘과 땅의 아름다운 조화 속에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사랑과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소중한 만남이 있는 이곳이 자연성전이 있는 월명동이다.
월명동을 개발한 정명석 선생은 생명을 구원해주신 성삼위에게 누구든지 이곳에 와서 찬양하라 말씀하고 있다.
돌조경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을 때는 외부의 기술자들을 불러 조경작업을 하였었다. 정명석 선생은 돌을 쌓아본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작업이 시작되고 얼마 후 외부 기술자들이 모두 떠나 버렸다. 작업에 쓰이는 돌이 너무 크고 위험하다는 것이 그들의 이유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선생은 제자들에게 우리가 직접 돌을 쌓자고 하셨다. 다른 대안이 없었다. 제자들은 "선생님도 우리도 경험이 없는데 어떻게 쌓을 수 있겠습니까?" 라며 여쭈었고 이에 선생은 "엄마 뱃속에서부터 돌 쌓는 것을 배우는 학원이 있느냐?" 라며 반문하셨다.
선생은 기도하며 그날부터 작업을 시작하셨다. 인생의 모든 삶을 자신보다는 오직 주 하나님 뜻을 이루며 살아온 선생이시다. 새벽기도로 시작한 선생의 하루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구상을 밑그림으로 쉼 없는 작업에 열의를 다하셨다.
돌도 나무도 제 위치를 찾지 못하면 아름다움을 잃어버리니 제 위치에 심으라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돌 하나, 나무 하나 일일이 하나님 구상을 받아 제자들과 함께 쌓고 심고 가꾸셨다.
그렇게 20여년이 흐른 지금의 월명동은 과거의 쓸쓸했던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적막하고 척박하기만 하던 땅이 이제는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며 어머니 품과 같은 아름답고 평화로운 자연성전으로 변화된 것이다.
찾아오는 이들의 이유는 다양하지만 힘들고 외롭고 심신이 지친 이들에게 하나님은 사랑과 치유로 위로와 희망을 얻게 하시고, 감사와 찬양을 드리려는 이들에게는 기쁨의 축복으로 함께하여 주신다.
정명석 선생은 말씀하셨다.
보잘 것 없던 내 인생이 하나님을 만나 변화되었고 값싼 고향 땅이 값비싼 성전으로 변화된 것처럼 모든 이들이 변화되어 성공하기를 소망한다고 말이다.
- 삽화 / 김덕민- 사진 / 스타사진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