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을 캐기 위해서는 지도와 나침반이 필요하다? 결코 그렇지 않다. 주님의 기도만 있다면 그 정성이 지도와 나침반이 되어 거대한 65톤의 보물을 캘 수도 있다.
기도를 통해 얻게 된 보물, 기도바위. 65톤의 육중한 바위가 어떤 정성을 통해 월명동에 오게 되었는지 그 사연 속으로 들어가 봤다.
정명석 목사님(이하 총재님)께서 해외에서 인터넷으로 돌조경을 가꾸셨던 2002년 10월. 직접 현장에서 돌조경 작업을 할 때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돌을 정확히 맞는 자리에 놓아야 하기에 어려운 작업인데 그것을 인터넷의 좁은 화면을 보면서 작업하는 것이란 상상할 수도 없이 어려운 일이다. 마치 목숨이 위태로운 응급환자가 생겼는데 의사가 빨리 갈 수 없어 전화로 치료하는 것보다도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
총재님이 계실 때보다 몇천 배 어려운 상황 속에 월명동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때는 아직 104톤 바위가 들어오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총재님은 104톤 바위를 두고 "너희들 저거 작업해 보지 않을래?" 하셨다. 무게가 104톤이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작업은 해야겠기에 104톤 바위를 보러 석막리 마을로 내려갔다. 우연히 쳐다본 주차장 감나무 밑, 황금같이 누런 밭돌이 거북이 얼굴만큼 삐죽이 나와 있는 것을 작업반이 발견했다. 하필이면 우리 땅과 남의 밭 경계에 바위가 있었다.
작업자들은 밭주인을 찾아가 "쌀 한 가마니 값을 드리겠습니다. 벼 좀 베고 돌을 가져가면 안 될까요?" 하고 정중하게 밭주인에게 청했고, 그는 흔쾌히 허락했다. 104톤은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몸 풀기로 "기도바위"는 거뜬히 옮길 수 있겠단 생각에 돌을 나르기로 했다.
얼핏 드러난 바위모양만으로는 그 크기가 얼마나 될지 상상조차 못 한 채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65톤의 밭돌. 5톤 트럭 13대의 무게에 육박하는 육중한 바위몸체가 황금색으로 번쩍이며 세상에 드러났다.
"허~ 너희들이 이걸 캤어?" 캐고 난 후 총재님께 말씀드리니 감탄사부터 나온다. 그 뒤를 잇는 감탄사는 감동으로 바뀐다.
"사실은 있잖아. 일주일 전에 기도했는데 기도할 때 예수님이 주차장 감나무 밑에 가면 보물 있다고 하시는 거야. 내가 얘기도 안 했는데 이걸 어떻게 캤어? 기도를 한 조건이 있기 때문에 너희들 통해서 캐게 해 주셨다."는 말씀이었다.
총재님 자신도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는 듯, 크기에 놀라고 무게에 놀랐다. 총재님께서 말도 안 했는데 작업자들의 마음에 그 기도의 정성이 들어가 저절로 그 돌을 캐오게 된 것이다. 이 보물을 캘 때 나침반도 지도도 없었다. 하지만 기도의 정성이 있었다.
총재님께서 직접 작업을 할 수 없었던 상황, 마음을 다 전달하기도 힘들었던 인터넷. 하지만 기도는 시공간을 초월해 작업반을 움직였다. 기도의 힘이 어떤 것인지 기도바위는 알고 있을 것이다. 기도는 불가능을 가능케 했다.
- 조은소리 2005. 여름.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