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최대로 할 만큼 다 하고, 그 터전에서 ‘조금 더’ 할 때...
그것이 운명을 좌우시킵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입니다.
월명동 야심작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쌓았을 때, 대걸작이 됐습니다.
섭리사 조각가에게도 성자 상을 조각할 때 코치했습니다.
“지금 한 데서 마지막으로 조금 더 해라.
그러면 조각이 살아난다.
지금 눈을 봐라.
그냥 말똥거리기만 한다.” 했습니다.
계속 조금 더 하게 하여, 얼굴이 살아 있는 조각을 만들도록
6개월, 1년, 2년씩 결재를 안 했습니다.
아쉬운 것까지 다 잡아서 조금 더 할 때 “살아 있는 조각이다!” 하게 됩니다.
아쉬운 것을 남기고 끝내면 걸작이 못 됩니다.
두 개의 작품을 만드는 것보다 한 개에 집중하여 조금만 더 해서
차이 나는 한 개의 작품을 만드는 것이 더 낫습니다.
관리할 때도, 전도할 때도, 강의할 때도, 기도할 때도, 말씀을 외칠 때도,
제스처를 할 때도 ‘조금만 더’ 하면, 조금 차이인데 A급 인생이 되고, A급 설교가 됩니다.
미인을 뽑는 대회에서 진과 선과 미는 조금 차이가 있지,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섭리사에서도 “저 사람과 나와는 별 차이가 없는데 크게 쓰이네?” 합니다.
따져 보지도 않고 말을 함부로 합니다.
대구 지역의 수백만 개의 사과 중에서 제일 크고 멋있는 것은 눈으로 봤을 때는 표도 안 납니다.
저울에 달아 봐야 되고, 사진을 찍어서 모든 각도를 다 봐야 됩니다.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무게도 두 번째로 멋진 사과보다 알밤 하나만큼 무게가 더 나갈 뿐입니다.
그런데 ‘조금 더 낫기 때문에’ 100만 개의 사과 중에서 킹이 된 것입니다.
금메달을 딴 선수와 은메달을 딴 선수도 조금의 차이로 순위가 결정됐습니다.
그러나 금메달과 은메달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이와 같이 섭리사에서도 크게 쓰이는 자는 그렇지 않은 자와 ‘조금의 차이’입니다.
그러나 그 차이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한국 대통령 선거 때도 당선된 자와 그다음에 표가 많은 자를 비교해 보면
전체에 비해 표 차이가 조금입니다.
그런데 ‘조금의 차이’로 5천만의 킹이 됐습니다.
‘조금 더’ 하면 이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2013년 2월 3일 주일말씀 중